주식 시장은 끝없이 하락하거나 상승하지 않습니다. 하락하다가도 상승하고, 상승하다가도 하락하죠.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주식 시장에도 통용되는 말입니다.
이번에는 국내 주식 시장과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주식 시장의 역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가 지수인 코스피입니다.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 100 포인트로 시작된 후 약 9년만인 1989년 3월 31일, 1,000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3저 호황'에 힘입어 건설, 금융, 종합상사 주도로 경제가 성장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당시의 시가총액 1위는 포항종합제철(현재 POSCO)이었습니다.삼성전자는 7위에 위치했고, 2위~6위는 모두 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승이 오면 하락도 오는 법, 1994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인 FOMC가 사전 공지 없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아시아 연쇄 외환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외환위기가 1997년 우리나라로 도달하면서 투자자들과 거래처들이 돈을 빼갑니다.
당장 돌려줄 달러가 모자라며 외환위기가 발생,
대출 원금을 상환하지 못한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주식이 상장폐지까지 되던 악몽같은 해였습니다.
하지만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주식 시장은 IT 혁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상승했습니다.
회사명에 '디지털'이나 '닷컴'이 붙은 회사의 주가는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수백% 상승했습니다.
이렇게 거품이 가득 꼈던 '닷컴 버블'은 2000년 4월 17일 처참한 결과를 불렀습니다.
개장 단 10분만에 증시가 9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인한 영향을 받은 국내 증시는 조금씩 살아나는 듯 했으나
2002년 카드대란(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신용위기가 발생)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500선까지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주식형 펀드가 재테크 열풍을 주도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다시 상승했습니다.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이 늘어난 점도 한 몫 했습니다.
그 결과로 2007년에 2,000포인트를 달성합니다.
하지만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글로벌 위기가 발생합니다.
중국 인프라 투자가 늘면서 성장했던 철강, 조선, 운송주가 몰락했으며,
코스피는 1,000포인트 지지선이 붕괴됩니다.
금융위기 사태 이후 자동차와 화학, 정유주의 활약으로 코스피가 다시 상승했습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코스피는 2,200포인트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1,700에서 2,200포인트 사이에서 움직이는 박스권 장세가 지속되며 '박스피'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1,500포인트 아래까지 하락했습니다.
큰 하락으로 끝이 없을 것 같던 코스피의 하락은 개인투자자들의 엄청난 저가 매수세를 등에 업고
3,000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만 47조원 어치를 매수하며 동학 개미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
미국 주식 시장은 1792년 증권 중개업자와 상인 24명이 월가 68번지에 모여 증권거래법 및 수수료율에 대해 협정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 미국 증권 거래소의 시작이었습니다.
1861년 4월 노예제의 존폐 여부를 두고 남북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군비 조달을 위해 미국 정부가 8,000만 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자,
이에 은행과 보험사가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증권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와 산업 재개가 시작됨에 따라 증권 시장도 더 발전하였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는 미국의 호황기였습니다.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었고, 매일매일이 '광란의 파티'의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1929년 10월 24일(검은 목요일)부터 10월 29일(검은 화요일) 까지 지속됐던 월스트리트 대폭락을 기점으로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우지수는 1929~1932년동안 90%가량 하락했습니다. 이를 회복하기까지 무려 22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대공황 탈출을 견인한 것은 제 2차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미국은 1942~1945년 GDP의 30%를 전쟁비용으로 지출하면서 투자, 수요 부진, 실업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습니다.
이 때, 군수품 계약을 하면서 소수의 대기업만을 선정하여 이들끼리 경쟁시키는 전략을 썼습니다.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대기업들의 혁신과 생산성은 큰 향상을 이뤘습니다.
전후 황금기가 끝나고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혹독한 경제 불황이 찾아오게됩니다.
제 1차 석유 파동과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1987년 10월 19일에는 검은 월요일이 찾아왔습니다.
홍콩에서 시작한 대규모 폭락 사태는 유럽을 거쳐 미국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 날 다우 지수는 22.61% 하락했습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사건 보다 더 큰 폭락이었습니다.
2001년에는 닷컴 버블 붕괴 사태로 인해 나스닥이 75% 하락하며 큰 경기 침체가 찾아왔습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IT 기업들에 많은 돈이 쏠렸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9.11. 테러까지 겪으며 미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2001년 닷컴 버블 위기를 지나 미국은 저금리로 경제를 부양하였는데 이로 인해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인하되면서
많은 돈이 부동산으로 이동, 주택 가격이 크게 상승하였습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2004년 이후 금리가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하자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주가 대폭락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 동안 지속된 주가의 대폭락은 2008년 이후 최대치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금방 전고점을 회복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주식의 역사를 보면 끝없는 하락은 없고, 끝없는 상승 또한 없습니다.
특히 미국 주식의 역사는 하락과 침체의 기간보다 상승의 기간이 훨씬 길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침체의 기간이 오면 매수의 기회로 삼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며,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귀가 따갑도록 들으셨을겁니다.
강세장이 아니라 약세장에서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무도 사지 않을 때 매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존 템플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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